박경리문학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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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설국에 다녀왔습니다
등록자 공원지기 등록일자 2009.02.16
IP 61.82.x.147 조회수 1164


거기에 설국이 있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

소설의 첫 장을 열면 나오는 이 문장은 설국의 무대로 출발하기 전부터 설레이게 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얗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눈 세상에 온 몸을 푹 담그고 싶었다. 그렇게 한 작가와 그의 작품 세계를 알뜰히 경험하고 느끼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곳, 소설 토지가 쓰여진 원주의 박경리 문학공원의 그 것과 비교해 보고 싶어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의 전설적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899~1972), 그는 1935년 ‘문예춘추’ 1월호에 처음 설국을 연재한다. 그리고 1968년에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 가와바타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깊은 눈을 떠올리며  기차를 타고 군마(郡馬)현과 니가타(新潟)현을 가르는 13㎞의 어둡고 긴 시미즈 터널을 지났다. 동경에서 오는 내내 마치 따뜻한 봄날 같은 정경이 이어졌었는데 도대체 갑자기 어떻게 설국이 펼쳐진다는 것일까? 설국 속의 허무에 찬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가 그랬듯 나도 터널을 지나면서 유리창에 손을 대고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 그런데 긴 시미즈 터널을 빠져 나오자 소설에 쓰여진 대로 눈앞엔 숨이 멎을 것 처럼 하얀 눈의 고장이 펼쳐졌다. 설국의 배경이 된 니가타현 유자와 마을은 습기 찬 북풍이 니가타의 1963m나 되는 다니카와산을 넘지 못한 채 그대로 눈이 되어 쏟아지는 곳으로 워낙에 많은 눈이 내리다보니 마을의 집들은 1층은 아예 주차장이나 창고로 사용하고 2층도 유리창 밖을 나무 칸막이로 막고 있을 정도였다.
여행의 많은 시간을 주인공 시마무라와 당돌하고 격정적인 여주인공 고마코가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던 산사, 삼나무 숲 그리고 그 숲 속의 돌사자, 넓적한 바위 등 그들의 흔적과, ‘설국’과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하는 설국관을 살펴보는 것으로 보냈고 가와바타가 소설 설국을 썼던 800년된 료칸에서 머물며 작품에 빠져있었다.
가와바타가 머물며 글을 썼던 다카한 료칸은 설국의 풍경이 시시 때때로 다양한 색깔과 모습으로 가슴에 와 닿는 아름답고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1930년대 가와바타가 머물렀던 3층짜리 작은 료칸은 증개축을 거듭해 지금은 외관이 전과 달라졌지만 자세히 밖에서 보면 2층만 특별하게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이유인즉  작가가 머물렀던 방을 그대로 뜯어냈다가 다시 조립해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가와바타와 ‘설국’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놓은 자료관이 마련돼 있었다. 자료관에서는 1930년대 당시의 유자와 마을과 당시 료칸의 모습, 여주인공 고마코의 실제 모델이었던 게이샤 고다카 기쿠에 대한 자료, 가와바타의 사진, 작가의 친필 자료들, ‘설국’이 연재됐던 잡지들이 너무나 소박하게 전시돼 있었다. 자료관 옆에서는 하루에 두 번씩 흑백 영화 ‘설국’이 하루 두 차례씩 상영되고 있었다.
이 번 문학기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엄청난 세월을 건너뛰어 내가 소설 속의 주인공 시마무라나 고마코가 되어서 다카한 료칸에 묵는 느낌을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일본 정통의 음식, 깔끔한 잠자리, 소박하고 정갈한 온천, 창밖으로 내다 보이던 보아도 보아도 싫증나지 않던 설국의 풍경들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 여행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었던 것은 해설에 있었다. 내가 참가한 문학기행에서는 시인 고운기 연세대 연구교수의 해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는데 아마도 이런 전문가의 세세하고 철저하고 다양한 해설이 없었다면 감동이 이처럼 배가 되진 못했을 것 같다.
유자와 마을에서 나는 아주 오래된 흑백사진첩을 펼쳐들고 아득한 기억 속 그 누구의 모습을 짚어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무한한 자연과 유한한 인간의 속절없음에 고뇌하며 극도의 아름다움을 그려냈던 가와바타의 선 깊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고독과 절망과 아픔을 하얀 눈 속에 담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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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 까치까치 설 전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