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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문화관'이 서기까지 - 김형국(서울대교수)(1999. 6. 8)
등록자 토지문학공원 등록일자 2007.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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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문화관'이 서기까지 - 김형국(서울대교수)(1999. 6. 8)

작가 박경리의 문학적 성취가 씨앗이 된 ‘토지문화관’이 완공되어 현장인 원주에서 9일 준공식을 갖는다. 공사(公私)간에 생존 작가와 인연이 있는 문화공간이 만들어지기는 지극히 드문 우리 사회에서, 그것도
정부산하 공공기관이 건축 ‘공양주’가 된 것은 전례없는 사건이다.

작가와 한국토지공사의 인연은 원주 단구동 작가의 집을 택지조성계획에 포함시켰던 것이 그 출발. 공공성
토지 공급을 원활히 한다며 사정(私情)은 일절 불문에 부친채 작가의 집도 철거한다는 방침이었으니 작가의
상심은 컸다. “터전을 잃는다는 것은 생존을 거부당한 거나 다름없다”고 안타까워했으니 인연치고는 악연이었다.

헐릴뻔한 박경리씨 작업현장

작가의 상심은 곧 우리 문화계의 손실. 무슨 방도가 없을까 여러 사람이 걱정했다. 나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저명 예술가들의 작업현장을 지키고 가꾸는 일은 사람답게 살자는 사회의 최소 규범일 터에,
우리 현대문학의 기념비적 성취라는 대하소설 토지 4,5부 집필 현장을 헐어버리는 것은 불가하다는 명분 하나
만들고 전직 토공사장에게 막무가내로 주선을 부탁했다. 지난날의 심복으로부터 공사의 사업 관행상 재고되기
어려운 일이니 공연히 중간에서 다리를 놓는 수고는 거두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도 들었다지만 거듭 설득한
끝에 마침내 재검토 용의의 답을 듣는다.

수용은 하되 현장은 보존하는 쪽으로 계획을 수정하겠다는 것. 전례없는 계획 수정에는 공사의 발상 전환도
작용했다. 도시 산업화를 위한 토지공급이 한편으로 자연 훼손이 되기도 함을 직시하고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라
땅의 보존도 중요하다고 판단, 한국토지개발공사의 이름에서 개발이란 말을 뺀 것도 그즈음의 변화였던 것이다.

작가의 집 보존은 지금 사장인 당시 부사장이 맡아 작가를 만난다. 두 사람의 첫 대면은 서먹서먹했다.
집 주변은 정지(整地)공사가 한창이어서 ‘반문화적’ 공사에 대한 작가의 불신은 깊을대로 깊었기 때문이다.
계획변경에 대한 공사의 결의를 부연하면서 부사장은 작가에게 “선생은 소설 토지를 팔아 생활하는 작가이고,
공사는 땅을 팔아 꾸려가는 회사이니 우린 동업자”란 말까지 곁들인다. 약속은 지켜져 토공은 20여억원의
돈을 들여 작가의 거처를 ‘기념관’으로 보존하고, 그 주변을 ‘원주 토지문학공원’으로 조성한다.
철거 예정지를 공원으로 변경하여 보존한 경우는 토공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악연이 어렵사리 반전되자, 선연(善緣)은 가속도가 붙는다. 기왕 인연을 맺은 김에 토공이 ‘박경리 토지문학상’
제정을 제의하자, “수많은 문학상에 또 하나를 보태는 것은 의미가 없다. 대신 토공에서 받은 보상금을 낼
터이니 함께 문화관을 짓자”고 역(逆)제의한다. 문화관은 은일(隱逸)의 환경 속에서 창작이 활성화되도록
돕는 독일,프랑스 등지의 ‘작가의 집’을 참조한 것. 작가의 구상은 더욱 구체적이다. “지명(地名)에
한반도의 중심이란 뜻이 담겨 있는 원주땅은 통일 한국의 문화적 비약을 기약할만한 곳이다. 러시아 관리가
문화가 있는한 우리는 다시 일어선다고 했다던데 경제를 말하지 않고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4대 강국 사이에 끼여 있어 퍽 군색한 형국이지만 거꾸로 문화로 일어설 수 있다면 우리도 단단히 한 몫
할 수 있다”고 했다.

문화관이 세워진 곳은 연세대 원주캠퍼스 이웃 오봉산(五峰山) 아래다. 동양사상의 오행(五行)을 상징하는
이름에다 “인연이 없으면 구하지 못할 땅”일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다. 땅을 찾아낸 사람은 작가의 집 일대
철거를 담당하던 토공 현장소장이다. 상명(上命)에 따라 철거를 강행하던 행실을 두고 “포클레인의 기계소음은
견디겠는데 감정 섞인 사람 소리는 못견디겠다”는 작가의 푸념을 듣던 바로 그 소장. 나중에 작가의 인품에
감복하여 문화관 터를 물색했고, 득녀(得女)해서 아이 이름을 청하자 작가는 흔쾌히 응한다.

土公과 협력‘문학공간’결실

생존 작가 관련 문화공간 준공식에 국가원수가 참석하는 것 또한 전례없던 일. 대통령이 참석하면 으레
고속도로같은 국책사업의 준공인 경우가 지금까지의 상식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토지의 문학성을 두고
“중화학공장 수백개 지은 것보다 더 값진 것”이라 했던 소설가 조해일의 촌평대로 이제야 나라 어른이
문화적 성취의 사회적 무게를 제대로 간파한 것이다. 김대중대통령이 잘 알려진 ‘토지’ 애독자인 점도 문화관
준공식 참석에 길을 놓았겠지만, 아무튼 이를 계기로 문화관이 더 많이 지어지고 거기에 국가원수의 발길이
잦아졌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김형국·서울대 교수·지역개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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